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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영화

계란은 탱크보다 위대하다 - <퓨리> 브래드 피트가 사랑한 음식은?

by 파크라이터 201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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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퓨리] 후기 / 계란은 탱크보다 위대하다

 

내가 좋아하는 '빵 형님'이 나온다더라... 
탱크 한 대로 적군을 격멸하는 2차세계대전판 '명량'이라더라....
영화 <FURY>에 대해서 제가 아는 사전 정보는 그게 전부였습니다. 
사전정보다 없더라도 탱크 포신에 팔을 괴고 서있는 브래드 피트의 카리스마  쩌는 포스터만 보아도 이 영화 보러가야겠구나, 생각했었거든요.

 


사실 저는 전쟁영화를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물론 액션영화는 환장하지만 그 액션이 전쟁일 때는 좀 꺼려하는 편이지요.
왜냐하면 전쟁이라는 설정 자체가 주는 '비극성' 때문입니다. 

전쟁영화들은 거의 대부분 실제 있었던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영화라 할지라도 거기서 일어나는 살인과 폭력은 거의 대부분 진짜 있었던 사실들의 영화적 변형일 뿐입니다. 그러니 단순히 '저건 그냥 영화일 뿐이야.' 하고 쉽게 봐지지가 않습니다. 그만큼 전쟁영화에서는 리얼함이 중요하고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제 아무리 리얼함을 잘 묘사한 영화라고 해도 실제 전쟁에서 벌어졌던 그 '리얼'들에 비하면, 영화 속의 리얼은 새발의 피일 테니까요.  

MBC에서 하는 <진짜 사나이>를 제가 잘 보지 않는 이유도 '리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황이 짜여진 대본에 의해 연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거기서 뭘하든, 그것은 진짜 군대에서일어나는 일들하고는 거리가 있으니까 말입니다. 아마 군대를 갔다 오신 분들은 대부분 공감하실 겁니다. '진짜 군생활'의 리얼함은 '진짜 사나이' 같은 예능프로그램보다는 '윤일병 사망사건' 같은 뉴스의 모습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군인, 군대, 전쟁을 다룬 방송이나 영화들을 볼 때 '리얼함'을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거기서 한치라도 벗어나는 순간, 결코 '좋아요' 버튼은 못 누르게 되고 마니까요.

 


영화 <퓨리>는  전쟁의 잔혹한 참상과 군인들의 복잡한 심리를 제법 '리얼하게' 그리고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메이킹 영상에 나온는 제작진들의 인터뷰를 봐도 이 영화의 리얼함을 위해 제작진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더군요. 

 


바이블

곧 알게 될 거야

노먼

뭘요?

바이블

전쟁의 참혹함
영화 초반에 노먼 앨리슨(로건 레먼)이라는 신병이 워대디(브래드 피트)의  탱크에 배치됩니다. 나이도 어리고, 행정병 출신에 신병이 전쟁의 한복판에 던져지고, 그의 눈으로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양면성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워대디

이건 전쟁이야. 

죽이지 않으면 죽는거지.

똑바로 해.

노먼

못하겠어요.

워대디

해야 돼. 

전쟁터에선 늘 있는 일이야. 

친구 따위는 없어. 

전투의 신 워대디와 신참병사 노먼. 

 

 

 


백전불패의 불사신 대장과 사람을 죽여본 적도 없는 신참 병사.

 

 

 


뭐, 흔한 구도이긴 하지만 저는 그런 설정과 캐릭터가 마음에 들더군요.

 

메인 플롯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 주연의 전쟁영화이지만, 서브 플롯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로건 레먼 주연의 성장영화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전쟁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탱크 전투씬의 긴장과 스릴과 리얼함이란 정말 엄지손가락을 두 개 다 치켜세우줄 정도입니다!
탱크 전투씬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 티켓값이 아깝지 않더군요. 

 


리얼하고 죽여주는 탱크 전투씬 이후 독일의 한 마을을 접수한 전차부대는 그곳에서 휴식을 취합니다. 2시간 내내 전투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ㅋㅋ

그래서 이 부분에선 전쟁영화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밥 먹는 장면, 예쁜 여자와의 러브씬 등이 등장합니다. 삭막하기만 한 전쟁영화에 한줄기 햇살과도 같은 아름다운 장면들이 바로 이 부분에서 펼쳐지게 되는 것이죠.

 

상황은 이렇습니다. 전투에서 승리한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부대원들은 술과 여자를 찾아 회포를 풉니다. 그 사이, 대장 워대디와 신참 노먼은 어떤 집을 수색하러 갔다가 미모의 두 여자를 만나게 되지요. 그 중 엠마는 노먼 또래의 젊고 매력적인 여인입니다. (이 영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이것이 진짜 '리얼한' 전쟁상황이었다면, 이 장면은 <퓨리>처럼 전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아무리 냉정한 전투의 신 위대디라 할 지라도 젊고 매력적인 여인이 육체를 보고 욕정을 못 참고 광폭하게 돌변해 그녀를 탐하고... 또래 소녀인 엠마에게 연정을 품었던 노먼은 워대디의 그 폭력성을 꼼짝없이 지켜볼 밖에 없으며 울분과 분노를 삭힌다....


뭐, 이런 식으로 리얼하게 전개되었을 수도 있었단 얘기죠. 
그런 상황 전개가 더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전쟁'이라는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전쟁영화를 싫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퓨리>에서는 이 상황을 아주 유니크하게 보여줍니다.
순서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피아노, 손금, 계란후라이, 이 세가지의 키워드를 통해서 말입니다. 

 

먼저 기억나는 것은 노먼이 피아노 치는 장면입니다. 행정병 출신인 노먼은 피 한방울 안 묻히고 자란 그 고운 손으로 엠마의 집에 있던 피아노를 칩니다. 아름다운 선율이 집안에 울려퍼지는가 싶더니 그의 모습을 본 엠마는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이미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반하게 됩니다. 참혹한 전쟁터의 한가운데에서 울리는 피아노 선율과 노랫소리는 묘하게 아름다우면서도 불안하죠.

 

 


그 다음은, 노먼이 엠마의 손금을 봐주는 상황입니다. ㅎㅎㅎ 이게 참... 저한테는 아주 웃겼습니다. 우리나라 옛날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작업 거는 방식중에 손금봐주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었습니다.  7,80년대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마 90년대까지도 자주 나오는 아주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장면입니다. 지금은 이런 손금 장면 시나리오에 쓰면 창의성 없다고 무진장 욕먹을 텐데... 여기선 나옵니다. 배경이 1944년이고 독일이면 괜찮은 건가요.?

노먼

이 선 보이죠?

당신의 애정선이에요.

운명적 사랑을 만나게 될 거에요.

엠마

(사랑스런 눈빛으로 노먼을 본다)

노먼

(엠마에게 키스한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계란후라이가 등장합니다. 

 

 

 


노먼과 사랑을 나누고 나온 엠마에게 워대디는 탄약통을 꺼내 보여줍니다. 그 안에는 놀랍게도 계란이 (여섯개 정도) 들어있었습니다. 엠마는 그것을 받아들고 이모와 함께 요리를 시작하죠. 나중에 나온 완성된 요리를 보면 별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저 계란후라이에 베이컨 몇 조각 구워져 있는, 요리라고 할 것도 없죠. 그런데 전쟁터의 군인들에겐 이것은 분명 대단한 요리이자 만찬입니다. 


 


노먼에게 성인식을 치르게 해주려고 찾아온 부대원들이 분노한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이 장면에선 탱크 부대원들의 복잡한 심리가 드러납니다. 지금까지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고 서로의 목숨을 함께 지켜온 부대원들보다도 갓 들어온 신참병사에게 더 많은 애정을 보여주고, 창녀 대신 젊은 여자와 잠자리도 갖게 해주는 대장 워대디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죠. 그리고 그 불만의 결정타가 바로 이 계란후라이입니다. 


노먼의 날이군

고르도

만찬을 준비해놓고도 우릴 안 불렀어. 

그깟 계란후라이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뭐가 만찬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실 분도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장면에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제가 군복무 했을 당시 1995년부터 1997년도에만 해도 군대에서 계란후라이를 먹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군대가기 전에는 계란후라이가 그렇게까지 먹지도 못하고 구경도 못할 음식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식당에 가면 서비스로 주는 계란후라이도 먹기 싫을 때가 많았으니까요. 집에서도 계란후라이는 그저 마땅한 고기 반찬이 없을 때, 뭐라도 단백질 음식을 섭취하고 싶을 때, 할 수 없이 해먹는 일종의 고기 대용품이지 정식 반찬 축에 끼지도 못했고, 메인요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저보다 더 이전 시대를 살았던 어르신분들에게는 다르겠지만요^^;) 

 

26개월의 군생활동안 저는 단 한번도 군대에서 계란후라이를 먹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장교식당에는 항상 계란후라이가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장교식당 근처를 지나가면 항상 그 계란후라이 냄새가 그 어떤 꽃향기보다고 향기롭게 풍겨와서 미칠 뻔했었죠. 하지만 일반 사병식당에선 계란후라이, 구경도 못합니다. 선임중에 장교식당 취사병이 있어서 물어봤더니, 계란후라이는 부치는데 손이워낙 많이 가기 때문에 일반 사병들 숫자만큼 그걸 부치려면 하루 종일 해도 못한다고 하더군요. 장교들 거 부치는 것도 힘들어죽겠다고. 한마디로 일손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장교들에게만 계란후라이가 공급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사병들에겐 네모난 두부처럼 만들어진 계란찜만 나오구요. 그래선지 저는 휴가나오면 꼭 먹는 음식중에 하나가 바로 계란후라이였습니다. 

그래서 전 <퓨리>의 이 장면에서 계란후라이를 보고 감히 '만찬'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귀한 계란후라이를 자신들과 먼저, 함께, 먹을 생각은 않고 노먼하고만, 노먼에게만 주려고 했다는 상황에 대해 부대원들이 얼마나 화가 났을지, 그들의 심정을 너무 잘 알 것 같았거든요. 콩 한조각이라도 나눠먹어야할 전우 사이에 계란후라이를 안 나눠먹다니!! 이건 말도 안되는 상황인거죠. 

 


제 생각엔 아마 워대디는 부대원들과 함께 먹으려 했을 겁니다. 계란은 분명 6개였으니까요. 계란후라이 다 되면 부대원들 부르려고 했는데, 그들이 먼저 들이닥쳐서는, 엠마와 계란후라이를 보고, 지들 멋대로 해석하고 삐쳐버린 것이죠. 부대원들이 얼마나 단단히 삐쳤는지, 지들은 게눈 감추듯 후루룩 계란후라이를 흡입하듯 먹고 나서 워대디 대장은 못 먹게끔 계란후라이에다 침을 발라버리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도저히 입맛떨어져서 못 먹게 할 정도의 끔찍한 소리들을 지껄입니다. 결국 워대디는 끝까지 계란후라이를 먹지 못하고 말죠. 

전쟁영화에서 계란후라이 먹는 씬이 뭐가 그리 대단해서 이렇게 떠드냐하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저한테는 이 계란후라이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왜일까요?

전쟁의 반대는 평화입니다. 

평화는 보통 깨진다고 표현합니다. 

평화만큼이나 깨지기 쉬운 게 바로 계란입니다. 

그러니 맘 편히, 마음껏 계란후라이를 부처먹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아주 평화로운 상황입니다. 영화에서든 현실에서든, 군대에서든 보통 세상에서든 다 마찬가지로 말이죠.

 

 
그러나 평화가 깨지는 순간, 그 흔해빠진 계란후라이는 감히 쉽게 접하지 못할 만찬처럼 귀한 음식으로 신분상승합니다. 평화가 깨지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듯, 계란후라이도 쉽게 못 먹는 상황이 되어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적어도 이 영화 <퓨리>의 세계관 안에서 만큼은, 계란후라이는 감히 평화의 상징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무적의 탱크보다도 계란이 더 위대한 이유이기도 하구요. 

 

p.s.

Fury에서 u 한 글자만 빼면 Fry 가 되는 것도 의미심장하지 않냐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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